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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공공 조형물 <LOVE>로 친숙한 팝 아티스트 로버트 인디애나.
그는 사랑을 노래했으나 사랑을 잃고 차갑게 외면 받았었습니다. 외로웠던 아티스트의 길을 흔들림 없이 걸을 수 있었던 건 예술이 그의 전부였기 때문인데요.
그는 예술이 자신의 '모든 것(Everything)’이며 ‘내가 사는 (What I live for)’라고 말합니다.
늦게 이루어진 꿈
지난 2013년 9월, 미국 휘트니 미술관에서 로버트 인디애나의 첫 번째 미술관 회고전 <사랑을 넘어서>가 열렸습니다. 뉴욕, 필라델피아, 인디애나폴리스, 벤턴빌, 아칸소, 스카츠데일, 애리조나, 뉴올리언스, 싱가포르, 도쿄, 타이베이 등에 놓여 지역의 랜드마크 역할을 톡톡히 해낸 그의 작품<LOVE>의 명성을 생각하면 너무 늦은 회고전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지도 모르겠네요.
이는 1966년 이후 작가의 대표작이 된 <LOVE>가 너무 강렬해 상대적으로 다른 작품이 주목 받지 못했던 탓이기도 하고 1988년 정식 저작권 등록을 하기 전까지 무단 복제된 이미지가 남용되는 바람에 상업 작가로 취급돼 평론가들에게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던 탓이기도 합니다.
그런 시선에 염증을 느낀 작가는 1978년부터 아흔을 바라보는 지금까지 뉴욕을 떠나 메인주의 바이널헤이븐 섬에서 은둔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작가의 이러한 행보는 문명 세계에 혐오를 느끼고 남태평양의 타히티섬으로 이주해 자신의 예술세계를 완성해 나간 후기인상주의 화가 고갱을 떠올리게 하죠.
로버트 인디애나 역시 바이널혜이븐 섬에서 일관된 작업으로 자신을 배척했던 뉴욕 미술계에 인정받았는데요. 동시에 그때의 상처를 초탈하고 자신의 삶을 자축하는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작가가 <LOVE> 외에 보여주고자 했던 <EAT>, <DIE>, <HUG>, <HOPE> 등의 단어는 삶의 본질에 맞닿아있죠.
또 초기작부터 줄곧 주제로 가져온 '아메리칸 드림’은 그의 삶 자체를 관통하는 미국의 정체성을 표현하며 '숫자 연작’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의 삶을 가장 간결하면서도 효과적으로 나타내는 숫자를 작가의 예술 세계 속에서 재구성한 것입니다. 상징적인 문자나 숫자, 기호를 중심으로 한 작가의 팝아트는 그래픽디자인으로 구현돼 상업디자인으로 치부되는 그래픽디자인 또한 예술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사랑. 오, 사랑!
로버트 인디애나의 본명은 로버트 클라크입니다. 1928년 태어나 친부모의 얼굴도 모른 채 입양된 그는 1958년 자신이 태어난 주를 기리며 로버트 인디애나로 개명했어요. 한곳에 1년 이상 머물지 못하는 양엄마 때문에 17살이 될 때까지 스물한 번의 이사를 했습니다. 친구를 사귈 틈이 없었던 그는 도로 표지판을 그리며 외로움을 달랬고 이때의 작업은 자연스레 훗날 그의 표지판 작업으로 이어졌죠.
아트 인스티튜트 오브 시카고에서 정식 미술교육을 받았고 1956년부터 뉴욕에서 단순한 문양으로 스텐실한 문자나 문자 이미지를 만드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1960년대엔 팝 아티스트들과 교류했고 당시 MoMA의 디렉터였던 알프레드 바에게 그의 작품 <아메리칸 드림 1>이 주목받으며 인지도가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작가를 웃게도 울게도 했던 그의 대표작 <LOVE>는 1964년 MoMA의 크리스마스 카드 제작을 위해 처음 도안 됐어요. <LOVE>는 늘 사랑하고 또 사랑받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감성을 파고들었고 당시 미국 반문화 혁명에서 내세우던 “사랑을 하자, 전쟁이 아닌”이란 구호와도 부합되며 힘을 얻었습니다. 덕분에 <LOVE>는 카드 밖으로 나와 지금의 조각이 됐답니다.
레드와 블루, 레드와 골드 등 <LOVE>의 강렬한 색채 대비는 이를 보는 이에게 강한 인상을 남김은 물론 사랑이라는 감정을 지속하는 과정에서 느끼게 되는 양극단의 감정을 표현한 것 같기도 합니다. 사각형의 격자 구도는 안정감을 주고 기울어진 ‘O’는 적절한 긴장을 느끼게 하죠. 또 그 어떤 부연설명 없이 간결하고 추상적인 문자로만 표현된 작품은 다양하고 제한 없는 상상력과 해석을 부여합니다.
로버트 인디애나의 <LOVE>는 그의 양엄마와 종교에서 근원을 찾을 수 있는데요. 그는 한 인터뷰에서 어렸을 때부터 종교 생활을 하며 사랑의 깊이를 인지했으며 따뜻한 양엄마를 통해 깊은 사랑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명동에 상륙하는 <LOVE>
<LOVE>는 뉴욕, 도쿄 등 세계적인 도시의 랜드마크에 놓이기도 했고 이것이 놓임으로써 랜드마크가 탄생하기도 했는데요. 그런 <LOVE>가 한국에 상륙합니다.
대신금융그룹의 명동 신사옥 앞에. 물론 한국에 이미 발을 붙이고 있는 <LOVE>가 있지만 사적인 공간이나 지방처럼 접근이 어려운 곳에 놓여 빛을 보지 못했죠. 대신금융그룹의 <LOVE>는 명동의 공공장소에 설치하려 한다는 것에 그 의미가 있는데요. 기존 명동 눈스퀘어 앞에서 시작해 명동 성당에서 끊기던 명동길을 조형물이 놓일 명동 신사옥까지 확대해 관광 명소를 추가하고 관광 영역을 확대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대신금융그룹이 <LOVE>를 선택한 이유는 복합적이에요. 우선 <LOVE>가 세계적으로 사랑 받고 친숙한 조형물이므로 명동에 또 하나의 문화 공간을 조성할 수 있다는 것과 대신금융그룹의 명동 신사옥 맞은편에 명동성당이 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습니다.
처음 로버트 인디애나에게 작품 의뢰를 한 건 작년 12월이었는데요. 처음 제안을 했을 때만 해도 미적지근하게 반응했던 작가는 시간이 지날수록 적극적이 됐어요. 자신의 작품이 서울의 공공장소에 설치되는 것은 처음인 데다 작품이 한국 관광의 랜드마크인 서울 명동에 설치된다는 것의 의미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된 까닭이죠.
대신금융그룹의 <LOVE>는 여러 가지 에디션 중 가장 큰 3.66m 높이를 자랑합니다. 이는 <LOVE> 조형물 중 가장 큰 것으로, 현재 전세계에 18개만 있으며 공공장소에 있는 것은 그나마 5~6개 정도 밖에 없으니 그 희소성이 더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LOVE> 조형물은 몇 개의 정해진 색 조합이 있는데, 대신금융그룹의 <LOVE>는 그 중 가장 색채 대비가 높아 작가의 정체성을 잘 나타낼 수 있는 블루/레드 조합을 선택했습니다.
컬러링 작업에만 약 3개월이 걸립니다. 이는 여러 번의 코팅을 통해 내구성을 높이고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색을 제대로 구현하기 위함이죠. 여의도에서 명동으로의 대신금융그룹 사옥 이전에는 초심을 기억하는 동시에 금융의 새로운 세대를 시작하겠다는 포부가 담겨있습니다. 이러한 시작을 <LOVE>와 함께한다는 건 새로운 세대의 중심에 자리한 가치가 사랑과 희망, 화합임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대신금융그룹의 또 한 번의 명동 시대가 <LOVE>와 함께 사랑으로 풍성하길 기대해 봅니다.
글 허재희 | 도움말 브랜드전략실 홍승정 과장 | 참고 『FRESH ART NEWYORK』, 『미술 출장』
발췌_대신과 함께하는 이야기 2016 | vol.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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