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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저축은행/대신 이야기

삶과 숨에 시나브로 젖어들다

 

술이 된 철공소 거리, 문래 예술촌

 

예술이 삶에 녹아있고, 삶이 예술이 되는 곳이 있다. 한국의 브루클린으로 불리는 문래 예술촌이다. 잔잔하게 삶과 예술,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이곳에서 봄의 완연함을 만끽해보자.

 

 

 

 

고층 아파트와 생활 근린 시설에 밀려 금방이라도 사라질 듯했던 문래동 철공소 거리가 젊은 예술가들과 함께 새 생명의 숨을 고르고 있다. 분주했을 삶과, 끓어 넘쳤을 활력은 분명 사라졌다. 하지만 시대에 밀려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이 아닌,조금씩 천천히 변해가고 있는 풍경은 긴 세월 고단했던 삶이 이제야 뿌리를 내린 듯 안정적이고 포근한 기운으로 가득하다.

 

1970~80년대 지어졌을 낡은 건물과 골목에서 과거의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과 미래의 새로운 꿈을 꾸려가는 사람들의 숨소리가 고즈넉하게 들려오는 그곳. 새 생명의 기운을 머금은 봄비가 내릴 듯한 어느 봄날,문래 예술촌을 거닐었다.

 

 

 

 

문래동 참새 방앗간, 치포리

 

지하철 2호선 7번 출구를 나와 큰길을 따라 5분 정도 걷다 보니 이내 왼편으로 을씨년스러운 골목이 나타난다. 낡은 창고형 건물과 크고 작은 철공소가 늘어서 있으며 우락부락한 팔뚝의 사내들이 오간다. 철공소 골목이자 문래예술촌의 입구인 이곳에 들어서면 곳곳에 숨쉴 곳이 있음을 알지만 섣불리 발길을 들이지 못하고 일단 '치포리’에 들러 숨을 고르기로 한다.

 

치포리는 문래 예술촌을 대표하는 북카페다. 옛 철공소 건물 2층에 자리한 카페는 인문학 관련 서적과 만화책을 비롯한 소소한 읽을거리 책들,카페 한 구석의 작은 갤러리로 찾는 이의 마음을 안정시킨다.

간단한 음료와 함께 브런치 메뉴도 준비되어있다. 주문한 커피를 들고 계단을 따라 오르니 작은 다락방 문이 나타나고, 그 문을 여니 소담한 옥상 테라스다. 한눈에 펼쳐지는 문래동 거리를 보며 풍경을 마음에 새긴다.

 

주소: 서울 영등포구 도림로 428-1
문의: 02-2068-1667

 

 

 

 

자유 여행자의 둥지, 어반아트 게스트하우스

  

치포리를 나와 걷다 보니 낡은 건물들 속에서 이색 카페와 갤러리, 예술가들의 공방이 모습을 드러낸다. 철공소, 전파사, 다방, 실비집 같은 토속적인 상점들과 나란히 하고 있는 모습이 어색하면서도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느낌이다. 작은 가죽 공예 가게 밖에 서서 일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니, 주인인지 점원인지 일하는 이는 눈인사만 살짝 건네고 곧바로 작업 삼매경에 빠진다. 그 무덤덤함에 마음이 더 편해진다.

 

갤러리가 없을까 둘러보던 중 간판 중에서 ‘URBAN ART’를 발견하고 2층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갤러리가 아니다. 뜬금없이도 게스트하우스다. 게다가 맞아주는 사내, 이곳에서 잠시 일하고 있다는 외국인 사내는 캐나다에서 온 여행자.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공간은 영국이나 프랑스를 여행 다니며 들렀던 작은 게스트하우스 같은 느낌이다.

 

게스트는 지방에서 여행 온 국내인과 해외에서 찾아온 외국인의 비율이 반반이라고 한다. 왠지 하루나 이틀 묵어가며 여행자들과 어울리고 싶은 곳이다. 비치된 문래 예술촌 지도를 하나 얻고는 아쉬운 발길을 돌린다.

 

주소: 서울 영등포구 도림로 43
문의: 070-4137-3565

 

 

 

 

철공소 속 오아시스, 비닐하우스

 

낡은 건물과 창고 사이사이에 자리한 카페와 갤러리, 공방도 재미있지만 더 눈길이 가는 곳은 철공소다. 당사자들에게는 삶을 위한 노동에 불과하지만, 도시 촌놈이자 이방인인 방문자들에게는 철을 제련하는 모습 자체가 예술가들 못지않은 예술적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이미 구경꾼들의 시선이 익숙한지 울툭불툭한 아저씨들은 귀찮은 시선에 아랑곳없이 자기 일에 열심이다. 수산시장만큼 뜨거운 삶의 현장은 아니지만 간간이 들려오는 날카로운 쇳소리와 함께 묵묵하게 흩어지는 굵은 숨소리에 목이 마르는 느낌이다.

 

주위를 둘러보니 제법 큰 철공소 옆에 자리한 퍼브, '비닐하우스’가 눈에 들어온다. 낡은 건물 속에 비닐하우스를 통째로 집어넣은 것이 철공소 거리와 이질감 없이 녹아 든다. 이름만 비닐하우스지,막상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면 모던한 카페이자 바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마치 제철소 용광로에서 막 뛰쳐나온 노동자라도 된 듯 생맥주 한잔 벌컥벌컥 들이켜니 그 맛도 맛이지만,기분이 참 일품이다.

 

주소: 서울 영등포구 도림로128가길 13-8
문의: 02-322-2514

 

 

 

 

이방인들을 위한 함바집, 경성카레


철공소가 즐비한 곳곳에는 부산식당, 대전집 등의 간판을 단 함바집 같은 작은 식당들이 자리하고 있다. 할머니의 손맛이 가득한 나물과 고봉밥이 나올 것 같은데, 작업복 차림의 사내들을 따라 들어가기에 영 계면쩍다. 철공소 거리를 빠져 나와 한 무리의 이방인을 따라 골목으로 들어선다. 피자 가게도 있고 파스타 집도 있다. 타코,일본 라멘,태국 요리 등 이태원 뒷골목에 뒤지지 않을 풍성한 먹을거리가 골목마다 숨어서 자리하고 있다.

 

 

 

 


한 사람이 "여기다!”라고 하며 가리킨 곳은 '쉼표 말랑’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다. 그런데 문 앞에는 '금일 휴업’이라는 간판이 걸려있다. 별일 아니라는 듯 그 사람은 무리를 이끌고 다시 골목이 따라 또 다른 곳으로 향한다. “여기도 명소지!” 두어 번 골목을 꺾어지자 나타난 곳은 ‘경성카레’다. 부녀가 함께 맞이하는 이 밥집은 카레와 일본 가정식 정식을 파는 곳으로 공간은 다섯 테이블이 고작이지만 그래서 더 정겹고 포근하다. 따뜻한 차로 잠시 허기를 달래니 정신 없이 흘러가던 철공소 거리의 풍경이 잊히는 느낌이다.

 

주소: 서울 영등포구 도림로 434-9 101호
문의: 010-3393-7264

 

 

 

 

하루의 숨을 내려놓는 쉼터,올드문래

  

철공소 골목이 마주한 대로를 건너면 문래예술촌의 2막이 열린다. 철공소 거리의 굵직굵직한 풍경 대신 나지막하고 아기자기한 공장들,공방들,갤러리들이 띄엄띄엄 자리하는 것이 전혀 다른 느낌이다. 천천히 걷기에는 더없이 좋은 곳이지만 시간이 많지 않은 이들이라면 반드시 안내 지도가 있어야 할 만큼 조용하고 평범한 주택단지 느낌도 든다.


이따금씩 나타나는 갤러리와 벽화에 지쳐갈 때쯤 골목 가운데에서 퍼브,'올드문래’를 만난다. 서양의 마구간 혹은 건초 창고같이 큰 공간에 자리한 탓인지 여태껏 지나온 아기자기한 예술촌에서의 소소한 감흥을 모두 툭툭 털어놓고 싶은 곳이다. 큰 공간을 채운 맥주의 종류도 다양한데, 그중에서도 국내에서 생산한 다양한 종류의 수제 맥주가 여행자의 발길을 잡아끈다.

 

주소: 서울 영등포구 도림로 433-6
문의: 02-6326-4336

 

 

 


여전히 살아 숨 쉬는 열정, GBN 라이브하우스
 

적당한 취기와 적당한 노곤함으로 기분 좋게 마지막 목적지로 향한다. 철공소 골목이 있는 대로변에 자리한 공연장 ‘GBN 라이브하우스’다. 역시나 철공소 건물들 사이의 지하에 있어 찾기 쉽지 않다. 불경기 탓인지 일찌감치 문을 닫은 조용한 거리에서 희미하게 들리는 음악 소리를 따라 걷다 보면 이곳에 이를지도 모른다.


초기에 '대안공간 문’이라는 간판으로 홍대 라이브 클럽 문화를 옮겨왔으며, 지금도 여전히 다양한 음악으로 매일 밤 젊음의 열기를 불꽃처럼 태우고 있다. 지금은 사라진 옛 산업 일꾼들의 뜨거운 숨소리와 오늘날 미래를 꿈꾸는 젊은 예술가들의 자유로운 숨소리가 한데 어우러진 이곳은 고즈넉하게 자리한 문래 예술촌의 숨겨진 얼굴이라 할 수 있다.

 

주소: 서울 영등포구 도림로 418
문의: 010-9182-0749

 

 


 

 

성열규 ┃ 박근완
발췌_대신과 함께하는 이야기 2017 | vol.1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