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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저축은행/대신 이야기

볼거리보다 추억이 필요할 때, 춘천


 

 

춘천의 북쪽과 남쪽

 

중장년의 여행자가 20-30년 전 추억을 떠올리기에 가장 좋은 여행지는 춘천이다. 청년 시절 누구나 춘천 여행 한 번쯤은 다녀왔기 때문이다. 소양강과 북한강은 똑같이 흐르고 있고, 닭갈비와 막국수는 여전히 맛있으며, 경춘선의 일부는 테마 파크가 되어 즐거운 놀이로 여행자를 기다리고 있다.

 

 

 

 

 

1980-90년대에 청년 시절을 보낸 (남자) 한국인 상당수는 기억에 남는 기차를 두 번 탔다. 하나는 '논산 가는 입영 열차’였다. '어색해진 짧은 머리를 보여주기’ 싫었고, '손 흔드는 사람들 속에 그대를 남겨두기’도 싫었다. ‘3년이라는 시간 속에 그대 나를 잊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기다리지 말라’고 한 것은 미안했기 때문이었다. 20-30년이 지난 지금도 꿈에 나오면 식은땀으로 이불을 흠뻑 적시는,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괴로운 열차였다.

 

 

 

 

또 하나의 기차는 ‘춘천 가는 MT(Membership Training, 모꼬지) 열차’였다. 서울 소재 대학의 신입생 절반은 버스타고 우이동으로 갔고, 나머지 절반은 경춘선 타고 대성리, 강촌으로 갔다. 집결지인 청량리역 자체가 MT의 시작이었다.

 

근처에 ‘588’이라 불리는 사창가가 있었는데, 짖궂은 남학생조차 호기심보다 큰 정체불명의 도덕적 순결주의 때문에 차마 둘러보지 못했다. 열차를 타는 것 자체가 로망이었으며, 운 좋은 청춘은 그 2-3일 MT 기간에 ‘오월의 내 사랑’을 만들어오기도 했다. 세상에서 가장 설레는 열차였다.

 

 

 

 

강촌역과 소양강, 막국수와 닭갈비

 

지금 강촌역은 폐역이며 물리적인 흔적이 5% 정도 남아있다. 하지만 설레는 추억은 이 5%로도 충분하다. 중장년의 여행자가 그 어떤 볼거리도, 콘텐츠도 없는 그곳을 서성이는 것은 모두 이 추억 때문이다. 이러한 추억은 소양강댐도 마찬가지다. 그때만 해도 여행은 ‘유명하다는 곳에 다녀왔다는 데 의의’를 두었다. ‘와, 댐이 크다’ 하나 느끼러. 지금 기준으로는 명소라 할 여지가 1그램도 없는 그곳을 참 열심히도 다녔다.

열여덟 딸기 같은 처녀의 순정을 몰라주던 소양강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흐른다. 다만 그 처녀를 형상화한 동상 앞에서 ‘이 처녀가 소양강 처녀구나’하며 십여 초 걸음을 멈추는, 그 두 개의 슬프고 설레는 열차를 탔던 중장년 여행자가 있다는 것이 달라진 것이라면 달라진 것이다.


충남 금산에 가면 사방이 인삼으로 만든 요리 천지다. 춘천 역시 사방이 막국수와 닭갈비 천지다. 요리의 특성상 어디를 가든 80점 이상 90점 미만이다. 그중 ‘신북막국수닭갈비거리’는 수십 개의 막국수, 닭갈비 음식점이 모여 있는 곳이다. 적당히 마음에 드는 곳을 찾아 들어가면 두 가지를 한 번에 즐길 수 있다.

 

 

 

 

서울에서도 흔히 즐길 수 있는 철판 볶음 요리보다는 숯불 구이 요리를 먹는 것이 여행 간 느낌을 더 들게 할 것이다. 더덕 무침도 훌륭한데, 그냥 먹어도 맛있고 닭갈비와 함께 살짝 구워먹으면 훨씬 더 맛있다. 더덕 한 접시(대략 7천원)면 소주 한 병이 뚝딱이다.

 

여기까지가 춘천의 북쪽 코스라면 지금부터 소개할 곳은 남쪽 코스라 할 수 있다. 한국 어디나 다 마찬가지겠지만 춘천 역시 사방이 ‘공사중’이다. 드라이브보다는 스팟에 중점을 두는 것이 낫다. 사실 이 스팟의 상당수는 (비수기에) 관리가 안 되고 있다. 아직도 ‘공사’나 ‘보수’ 중인 곳이 태반이고, 정기 휴일이 아니어도 문 닫은 곳이 적지 않다.

 

 

 

 

 

재미있고 근사한 레일바이크

 

무난하게 춘천을 즐기기 위해서는 ‘강촌레일바이크’ 패키지를 이용하면 된다. 2인승은 3만원, 4인승은 4만원이다. 평일에 가면 중국에 온 느낌이 들 정도로 중국 관광객이 많다. 대략 2시간 코스인데, 그중 레일바이크를 타는 코스는 1시간 정도다. 코스 대부분이 완만한 내리막길이기 때문에 ‘나는 힘들어서 못 타’ 하는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처음 10여분은 화가 날 정도로 시시하지만 20분이 지나면서 펼쳐지는 북한강과 저 너머 삼악산은 가히 절경이다. 저물녘에 타는 것을 추천한다. 지는 해를 품은 강이 금빛으로 빛난다. 얼마 안 가 다시 트램으로 갈아타고, 또 얼마 안 가 셔틀버스를 타고 출발지로 돌아온다. 트램에서 내려 셔틀버스로 이동하는 길에 앞에서 언급한 강촌역을 다시 한 번 마주하게 된다. 20-30년 전에 서울을 오갔던 철로가 지금은 트램의 관광 코스인 것이다.


 

 

 

출발지 인근에 김유정역과 김유정문학촌이 있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김유정의 문학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 건물이나 하나 정해 가까이 가서 툇마루에 걸터앉아 햇빛을 피하면서 김유정의 ‘봄봄’이나 ‘동백꽃’을 읽거나 떠올릴 수는 있다. (4월 현재) 툇마루에서 낮잠을 즐기는 로맨틱한 여행자도 몇 명 보았다.

 

다양한 춘천여행 코스 중 당일치기로 적당한 ‘드라이브 코스’는 세 가지다. 하나는 소양강댐-물문화관-청평사-물레길이다. 소양강댐과 물문화관은 붙어있고, 청평사는 배로 가거나 차로 갈 수 있다. 청평사 가는 길은, 사찰 가는 모든 길이 그렇듯, 주변 경관이 근사하다. 물레길은 배 타고 이동하는 관광 코스다.

 

다른 하나는 강원종합관광안내소-공지천-명동-강촌레일바이크-제이드가든 코스고 마지막 하나는 소양강댐-강원도립화목원-춘천막국수체험박물관-김유정문학촌-강촌레일바이크코스다.

 

춘천막국수체험박물관은 아이와 가면 좋고, 월요일은 휴관이다.

 

 

 

 


김형렬┃사진 권윤성
발췌_대신과 함께하는 이야기 2017 | vol.169